Peter Jeon 2023. 10. 16.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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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에는

집안이 어려운 친구들이 많았다.

 

기억에 남는 일들이 몇 가지 있는데,

1학년 첫 수헙때 담임 선생님께서

"엄마나 아빠가 없는 어린이 손 들어보세요"

했을때, 한 반에 60명 정도되던 아이들 중

적어도 20명이 넘게 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집이 가난해서 엄마가 도망간 아이들이나

아빠가 일하다가 사고로 돌아가신

아이들이 특히 많았다.

 

그렇다보니 점심시간이 되면

도시락을 못 갖고 온 아이들이

학교앞 수돗가나 운동장에서

어슬렁 거리는 일을 보는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였다.

 

 

5학년에 올라갔을때 일이다.

담임 선생님은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 같은 분이였다.

(지금도 그 분의 성함이 기억난다)

 

그 선생님은 점심 시간이 되면

꼭 도시락 검사를 하셨다.

그리고 도시락을 안 가져온 아이가 있으면

교무실로 조용히 부르신 후

본인의 도시락을 내어주셨다.

 

도시락을 가져온 아이들도

서로 같이 옹기종기 모여서

맛있는 반찬은 함께 나눠 먹으라고

당부하시곤 했다.

 

우리집은 그 당시 꽤 부유한 편인데다

어머니께서 집안일을 도와주시는

요리솜씨 좋은 할머니 한 분을

고용하고 있던터라

내 도시락에는  빠지지 않고

미니 돈까스나 프랑크 소시지 같은

나름 진귀한 반찬이 끊이지 않았다.

 

당연히 다른 아이들에게

내 도시락은 부러움의 대상이였는데,

떄문에 난 점심시간 때면

여기 저기서 날아드는

친구들의 포크를 뿌리치느라

신경전을 벌이곤 했다.

 

친구들과 반찬을 함께

나눠 먹으라고 하시는

선생님의 말씀이 당시로서는

불편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였다.

 

그 날도 점심시간이 되자

선생님께서 도시락 검사를 하셨는데,

한 아이가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선생님께서 도시락은 어디있냐고,

도시락 안 갖고 왔으면

선생님 것을 주겠다 하시는데

 

그 아이는 화가난 듯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고 있더니,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여기 저기서 같은 반 아이들의

놀리거나 흉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아이들도 특별히 나쁜 심보는

아니였으리라 생각한다.

그저 아직 철없는 아이들의 

장난 정도 였던것 같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갑자기

불같이 화를 내셨다.

 

친구가 도시락을 못 가져와서

눈물을 흘리는게 재밌냐며,

오늘은 모두들 잘못을 뉘우칠때까지

아무도 점심을 먹을 수 없다고

엄하게 소리치셨다.

 

반 아이들은 모두들 꿀 먹은 벙어리마냥

책상위에 도시락만 올려 둔채로

먹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한 참이 지나자 여기저기서

아이들의 배 곯는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에게

점심도 못먹고 배가 고파보니

어떤 마음이 드냐고 물으셨다.

 

같은 반 친구가 점심을 못먹고 있으면

너희들은 어떻게 해야되겠냐며,

타인을 생각할 줄 아는

이타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하나 둘 훌쩍 거리는 아이들이 나왔고

그제서야 선생님은 부드럽게

아이들을 타이르시며

이제 점심을 먹어도 된다고 하셨다.

 

물론, 도시락을 안 갖고 온 그 아이는

선생님과 함께 교무실로 가서

선생님의 도시락을 먹게되었다.

 

 

......

 

 

그 분은 아마 지금쯤은

하늘나라에 계시리라.

 

나는 한 번도 교무실에서

그 선생님의 따뜻한 도시락을 

먹어본 적은 없지만,

 

그 분께서 몸소 보여주신

그 아름다운 모습을

결코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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