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에는
집안이 어려운 친구들이 많았다.
기억에 남는 일들이 몇 가지 있는데,
1학년 첫 수헙때 담임 선생님께서
"엄마나 아빠가 없는 어린이 손 들어보세요"
했을때, 한 반에 60명 정도되던 아이들 중
적어도 20명이 넘게 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집이 가난해서 엄마가 도망간 아이들이나
아빠가 일하다가 사고로 돌아가신
아이들이 특히 많았다.
그렇다보니 점심시간이 되면
도시락을 못 갖고 온 아이들이
학교앞 수돗가나 운동장에서
어슬렁 거리는 일을 보는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였다.
5학년에 올라갔을때 일이다.
담임 선생님은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 같은 분이였다.
(지금도 그 분의 성함이 기억난다)
그 선생님은 점심 시간이 되면
꼭 도시락 검사를 하셨다.
그리고 도시락을 안 가져온 아이가 있으면
교무실로 조용히 부르신 후
본인의 도시락을 내어주셨다.
도시락을 가져온 아이들도
서로 같이 옹기종기 모여서
맛있는 반찬은 함께 나눠 먹으라고
당부하시곤 했다.
우리집은 그 당시 꽤 부유한 편인데다
어머니께서 집안일을 도와주시는
요리솜씨 좋은 할머니 한 분을
고용하고 있던터라
내 도시락에는 빠지지 않고
미니 돈까스나 프랑크 소시지 같은
나름 진귀한 반찬이 끊이지 않았다.
당연히 다른 아이들에게
내 도시락은 부러움의 대상이였는데,
떄문에 난 점심시간 때면
여기 저기서 날아드는
친구들의 포크를 뿌리치느라
신경전을 벌이곤 했다.
친구들과 반찬을 함께
나눠 먹으라고 하시는
선생님의 말씀이 당시로서는
불편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였다.
그 날도 점심시간이 되자
선생님께서 도시락 검사를 하셨는데,
한 아이가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선생님께서 도시락은 어디있냐고,
도시락 안 갖고 왔으면
선생님 것을 주겠다 하시는데
그 아이는 화가난 듯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고 있더니,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여기 저기서 같은 반 아이들의
놀리거나 흉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아이들도 특별히 나쁜 심보는
아니였으리라 생각한다.
그저 아직 철없는 아이들의
장난 정도 였던것 같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갑자기
불같이 화를 내셨다.
친구가 도시락을 못 가져와서
눈물을 흘리는게 재밌냐며,
오늘은 모두들 잘못을 뉘우칠때까지
아무도 점심을 먹을 수 없다고
엄하게 소리치셨다.
반 아이들은 모두들 꿀 먹은 벙어리마냥
책상위에 도시락만 올려 둔채로
먹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한 참이 지나자 여기저기서
아이들의 배 곯는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에게
점심도 못먹고 배가 고파보니
어떤 마음이 드냐고 물으셨다.
같은 반 친구가 점심을 못먹고 있으면
너희들은 어떻게 해야되겠냐며,
타인을 생각할 줄 아는
이타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하나 둘 훌쩍 거리는 아이들이 나왔고
그제서야 선생님은 부드럽게
아이들을 타이르시며
이제 점심을 먹어도 된다고 하셨다.
물론, 도시락을 안 갖고 온 그 아이는
선생님과 함께 교무실로 가서
선생님의 도시락을 먹게되었다.
......
그 분은 아마 지금쯤은
하늘나라에 계시리라.
나는 한 번도 교무실에서
그 선생님의 따뜻한 도시락을
먹어본 적은 없지만,
그 분께서 몸소 보여주신
그 아름다운 모습을
결코 잊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