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학원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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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기억의 파편들

피아노 학원 선생님

by Peter Jeon 2023.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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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섯살이 되자 부모님은 나를 피아노 학원에 보내셨다.
 
내가 살던 동네에는 피아노 학원이 하나 있었는데
머리가 하얀 할머니 선생님이
가정집에 피아노를 세대 정도 놓고
동네 꼬마들을 가르치셨다.
 
선생님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셨다.
그래서 피아노 학원에 가면
항상 피아노 위에는 십자가가 있었고,
선생님은 틈날때마다 짧게나마 묵주기도를 하셨다.
 
 
어느 추운 겨울 날,
그날은 전날 밤부터 내린 눈으로
온 세상이 하얗게 뒤덮인 후였다.
 
눈을 헤치며 피아노 학원에 가보니
다른 아이들은 아무도 없고
선생님만 혼자 계셨다.
 
선생님은 나에게 이런 저런 곡들을
연주해보라 시키시고
뒤에 앉으셔서 내 연주를 지켜보고 계셨다.
 
그러던 중 초인종이 울렸다.
 
보통 피아노를 배우러 오는 아이들은
문을 노크하고 들어오지
초인종을 누르는 일이 없었다.
 
자연스레 궁금해진 나와 선생님은
문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이내 문 앞에는 행색이 남루한
한 행인이 나타났다.
 
말이 좋아 행인이지
말그대로 그 사람은 구걸하는 거지였다.
 
1980년대 초중반만 하더라도
거리에는 팔 다리를 잃은채
돈을 구걸하는 걸인들이 많았다.
 
당시 그 사람은 팔 다리는 멀쩡했으나
추운 겨울 임에도
입고 있는 옷이 볼품 없었고
매우 춥고 힘들어 보였다.
 
그 걸인은 구걸할 힘도 없는 듯
아무말도 않은 채
그저 처분을 기다리는 사람 마냥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곧이어 일어난 일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한다.
 
선생님께서는 서둘러
장농으로 달려가 두꺼운 외투를 하나 고르시더니
그 걸인에게 가서 입혀주셨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있는대로 돈을 꺼내
그 걸인의 손에 꼬옥 쥐어주셨다.
 
아무런 말씀도 않으신채.
 
그 걸인은 고맙다는 말도 없이
그저 피곤한 눈으로
조용히 피아노 학원을 떠나갔다.
 
 
어린 마음에도 그때 속으로
왜 저 사람은 고맙다는 말도 하지 않는걸까
하고 궁금해했던 기억이 난다.
 
걸인이 떠나고 선생님 또한
아무 말씀이 없었다.
 
불행한 사람을 도와줘야 된다느니
참 딱한 사람이니 하는 말씀도 없었고
도와줬는데 고맙단 얘기도 안하네란
말씀은 물론 더더욱 없었다.
 
그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선생님은 다시 나의 피아노 연주를 봐주셨고
그렇게 나는 수업을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 선생님은 지금쯤은
아니 한참 전에 돌아가셨으리라.
 
그리고 나는 그 분이
지금은 자애로운 천주님의 곁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고 계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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