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기억의 파편들' 카테고리의 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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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기억의 파편들12

성탄절의 기억 어렸을때는 겨울이 좋았다. 겨울이란 단어 자체가 좋았다. 흰 눈이 내리는 어두운 밤, 눈 싸움, 눈사람, 크리스마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와 선물들, 밤 늦게까지 TV에서 방송되는 영화, 한 살 더 나이를 먹는다는 설레임 등. 사계절 중 어느 계절이 제일 좋으냐는 질문을 받으면 언제나 주저없이 겨울이라고 외쳤던 기억이 난다. 어린 아이에게 겨울을 제일 설레이는 시기로 만들어주는 마법의 단어는 역시 뭐니뭐니해도 성탄절인것 같다. 하얀 눈으로 뒤덮인 세상, 어두운 밤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 몰래 찾아와 선물을 주고 가시는 고마운 산타할아버지. 내 기억 속 80년대의 성탄절은 언제나 길거리에 캐롤송이 울렸다. 거리마다 리어카나 가판대에 캐롤송 테이프를 파는 아저씨들이 있었다. 그 옆에는 군고구마나 군밤을 파는 상.. 2023. 11. 11.
가을비 내리는 도서관 아침에 출근하는데 밤 사이 비가 내렸는지 차가 비에 젖어 있었다. 알고보니, 오늘은 절기상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이라 했다. 춥고 쌀쌀해진 날씨에 비까지 내린 덕분인지 문득 아주 오래전 이맘때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초등학교 6학년때였던 것 같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수원에 있는 작은 산 아래 붙어 있는 정말 조그만 시골학교였다. 학교가 끝나면 아이들은 교문밖을 빠져나와 저마다 학교앞 구멍가게에서 간식을 사먹거나 뽑기를 하거나, 그도 아니면 삼삼오오 모여 놀이터로 놀러갔다. 나는 친구들은 많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점차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떨때는 학교가 끝나면, 학교 뒷산을 끙끙거리며 올라 산꼭대기에 있는 도서관에 가곤했다. 약간 찬바람이 불기시작한 가을, 아마도 10월 이맘때였던것 같다. 그날.. 2023. 10. 24.
도시락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에는 집안이 어려운 친구들이 많았다. 기억에 남는 일들이 몇 가지 있는데, 1학년 첫 수헙때 담임 선생님께서 "엄마나 아빠가 없는 어린이 손 들어보세요" 했을때, 한 반에 60명 정도되던 아이들 중 적어도 20명이 넘게 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집이 가난해서 엄마가 도망간 아이들이나 아빠가 일하다가 사고로 돌아가신 아이들이 특히 많았다. 그렇다보니 점심시간이 되면 도시락을 못 갖고 온 아이들이 학교앞 수돗가나 운동장에서 어슬렁 거리는 일을 보는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였다. 5학년에 올라갔을때 일이다. 담임 선생님은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 같은 분이였다. (지금도 그 분의 성함이 기억난다) 그 선생님은 점심 시간이 되면 꼭 도시락 검사를 하셨다. 그리고 도시락을 안.. 2023. 10. 16.
성당 앞 오락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자 부모님은 나를 동네 성당의 복사단에 들게 하셨다. 부모님, 특히 아버지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셨는데 베드로라는 세레명을 받으셨으나 '베드로는 아들에게 주고 싶은 이름'이라 하시면서 바오로라는 세레명을 받으셨다. 참고로 베드로라는 이름은 반석위의 교회라는 뜻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분의 첫 번째 제자인 시몬에게 주신 이름이다. 아마도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 내가 반석위에 세운 교회처럼 반듯하게 신앙생활을 하길 바라셨던 것 같다. 하지만, 아버지의 바람과는 달리 나는 그렇게 신앙심이 깊은 복사는 아니였다. 오히려 그보다는 자주 성당을 빼먹거나 성당에 나가도 미사시간 중에 공상을 하기 일쑤였다. 내가 다니던 성당은 아주 높은 언덕 위에 있었는데, 나와 내 여동생은 .. 2023. 10. 10.
가을 운동회 아침 저녁으로 제법 날씨가 쌀쌀해졌다. 이제 정말 가을인 것 같다. 문득 초등학교 다닐때의 가을 운동회가 생각난다. 가을 운동회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화약 냄새다. 아이들이 달리기 시합을 할때 체육 선생님이 쐈던 장난감 권총의 화약. 학교 앞 문구점(이라기 보다는 그냥 작은 구멍가게)에서 백원에 몇개 들이 화약을 팔았는데, 그 중에는 동그랗게 6연발 장난감 권총에 들어가는 총알처럼 된 것도 있었다. 가을 운동회 달리기 시합때 체육 선생님은 장난감 권총에 그 화약을 넣고 총을 쏘셨다. 그리고 그것은 온 학교에서 체육 선생님만의 특권이였다. 출발선에 흰 운동복을 입은 아이들이 비장한 얼굴로 선다. 보통 여섯에서 여덟명 정도가 한 번에 시합을 했는데, 출발선에 설때의 그 두근거림이 아직도 생생하다... 2023. 10. 7.
자유를 기다리는 얼음이 된 아이 어렸을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집 앞 놀이터에서 놀던 때가 주로 생각난다. 지금이야 아이들이 스마트폰이나 TV를 보며 놀지만 내가 어렸을때는 놀이라고 하면 무조건 아이들이 함께 흙투성이가 되도록 놀아야 진짜 놀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저학년인 2학년 정도까지는 부모님께서 일도 바쁘셨고 장남인 내 학업에 큰 관심은 없으셨던터라 정말 신나게 놀았었다. 저녁을 먹고 있으면 이미 창 밖에선 친구들이 집집 마다 돌아다니며 "OO야, 노올자~!" 하고 부르는 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이 집 저 집에서 아이들이 입에 밥을 하나가득 문 채로 나와서 정말 흙강아지가 되도록 놀았다. 주로 했던 놀이는 얼음땡이였는데, 술래인 한 명이 여러명을 대상으로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쫓아가다가 상대방이 "얼음!"이라고 외치기.. 2023.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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