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 앞 오락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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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기억의 파편들

성당 앞 오락실

by Peter Jeon 2023.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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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이 되자
부모님은 나를 동네 성당의
복사단에 들게 하셨다.
 
부모님, 특히 아버지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셨는데
베드로라는 세레명을 받으셨으나
'베드로는 아들에게 주고 싶은 이름'이라
하시면서 바오로라는 세레명을 받으셨다.
 
참고로 베드로라는 이름은
반석위의 교회라는 뜻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분의
첫 번째 제자인 시몬에게 주신 이름이다.
 
아마도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 내가
반석위에 세운 교회처럼
반듯하게 신앙생활을 하길
바라셨던 것 같다.
 
 
하지만, 아버지의 바람과는 달리
나는 그렇게 신앙심이 깊은
복사는 아니였다.
 
오히려 그보다는
자주 성당을 빼먹거나
성당에 나가도 미사시간 중에
공상을 하기 일쑤였다.
 
내가 다니던 성당은
아주 높은 언덕 위에 있었는데,
나와 내 여동생은 농담삼아
그 언덕을 골고타 언덕이라 불렀다.
(골고타 언덕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형에 처하신 곳이다)
 
골고타 언덕을 오르는 것은
어린 나이에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였지만
내겐 그보다 더 힘든 일이 있었다.
 
바로,
성당 언덕 바로 아래 있는
동네 오락실을 못 본척하고
지나가는 일이었다.
 
아...
어린 아이에게 동네 오락실은
얼마나 큰 유혹이였는지!
 
오락실 곁을 지날때면
밖에서도 오락실 문 밖으로
그 특유의 게임 소리들이 들렸다.
 
뿅뿅 삐요용 붕붕부우웅 하는
현란한 소리들이 마치 마귀처럼
아이의 마음을 유혹한다.
 
"어서 들어와서 한 번만 해.
 딱 한 게임만 하고 가면
 성당에 늦지 않아."
라고 말하는 것 같다.
 
결국 못 이겨 안에 들어가면
그 길로 빠져나올 길은 없다.
 
어두컴컴한 오락실 안에는
군데 군데 빈 자리가 보인다.
 
50원짜리 하나를 넣고
동그란 버튼을 누르면
경쾌한 소리와 함께
게임이 시작된다.
 
그리고 한 게임 더,
한 게임 더, 
마지막 한 게임만 더...
 
그렇게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고
어느덧 미사시간은 끝이난다.
 
미사가 끝나고
아이들이 언덕에서
성당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그제서야 강한 죄의식을 느끼며
조용히 오락실을 빠져나와
슬그머니 미사가 끝나고 나온
아이들틈에 섞여 들어간다.
 
 
가끔 그렇게 오락실에서 놀다가
아버지에게 걸린 적도 몇 번 있었다.
 
정신 없이 게임을 하고 있는데
뒤에서 무서운 인기척과
검은 그림자가 느껴지는 순간,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이미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알고있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학교 공부를 게을리하거나
시험을 못본다고 혼내신 적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평소에 거짓말을 하거나
어른들께 무례하게 행동하거나
특히 성당을 빠진 경우,
그것도 거짓말을 하고 빠진 경우는
절대 용서치 않으셨다.
 
 
아...
아버지께 혼이 난 과정은
너무 부끄러운 일이라
더이상은 설명하지 않겠다.
 
하지만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아버지께 호되게 혼난 경우에도
 
제일 가슴 아팠던 것은
아버지의 무시무시한 얼굴이나
호된 매가 아니라
아버지의 실망한 표정이였다.
 
어린 나이에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아버지께 실망감을 드렸단 사실을.
그리고 그 사실 자체가
너무도 마음이 아팠다.
 
 
......
 
 
한참 시간이 흘러,
성경말씀 중에서
베드로의 일화를 알게 되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거짓말 하였으나
결국 죄를 뉘우치고
죽음도 이기지 못하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게 된다.
 
베드로와 이스카리옷 유다는
둘다 그리스도를 저버렸으나,
유다는 스스로 목숨을 저버렸고
베드로는 뉘우치고 스스로 깨달았다.
 
 
아버지께서 내게 물려주신
진정한 유산은,
그런 것이었다.
 
쉽고 유횩에 빠질 수 있는 길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혹시라도 유혹에 빠졌더라도
뉘우치고 더욱 굳센 마음을
만들 수 있도록 스스로
자기 자신을 연마해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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