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저녁으로 제법 날씨가 쌀쌀해졌다.
이제 정말 가을인 것 같다.
문득 초등학교 다닐때의
가을 운동회가 생각난다.
가을 운동회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화약 냄새다.
아이들이 달리기 시합을 할때
체육 선생님이 쐈던
장난감 권총의 화약.
학교 앞 문구점(이라기 보다는
그냥 작은 구멍가게)에서
백원에 몇개 들이 화약을 팔았는데,
그 중에는 동그랗게
6연발 장난감 권총에
들어가는 총알처럼
된 것도 있었다.
가을 운동회 달리기 시합때
체육 선생님은 장난감 권총에
그 화약을 넣고 총을 쏘셨다.
그리고 그것은 온 학교에서
체육 선생님만의 특권이였다.
출발선에 흰 운동복을 입은 아이들이
비장한 얼굴로 선다.
보통 여섯에서 여덟명 정도가
한 번에 시합을 했는데,
출발선에 설때의 그 두근거림이
아직도 생생하다.
운동장에는 이미
체육선생님이 여러번 발사한
화약총의 매캐한 냄새가 가득하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추스리고
출발선에 서서 달리기 포즈를 취한다.
살짝 체육 선생님을 바라보니
선생님이 천천히 장난감 총 들은
손을 하늘을 향해 올린다.
꿀꺽.
마른 침을 삼킨다.
"탕!"
운동장을 울리는 화약총 소리가 나고
출발선에 선 아이들이 달려나간다.
동시에 응원석에 앉아있는
구경중인 아이들의 "와~"하는
함성도 들린다.
나는 언제나 달리기 시합이 싫었다.
항상 죽을힘을 다해
열심히 뛰었지만
결과는 늘 꼴등이였다.
그것도,
뒤에서 두 번째로 들어오는 아이와도
한 참을 거리가 벌어져 들어오곤했다.
3학년때 였던가,
그때 가을 운동회때
약국 일로 바쁘실텐데
아버지께서도 참석하셨었다.
역시나 제일 마지막으로
결승선에 들어와
헐떡이고 있는 나에게,
아버지께서는
"야, 너 뒤에서 두 번째 애랑도
한참 차이나더라"
하는 덕담(?)을 건네셨었다.
그때는 정말 얼마나 부끄럽던지
어머니께서 싸오신
보온병에라도 들어가 숨고 싶었다.
그러다 어른이 되어서
나의 제일 좋아하는 운동 중 하나가
달리기가 되었다.
회사 일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머리가 복잡할 때는
늦은 저녁에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무작정 나와 뛰었다.
일요일 이른 아침은
꼭 조깅을 하는 것이
나만의 루틴이 되기도 했다.
이제는 허리 디스크 때문에
더이상 달리기를 할 수는 없지만..
지금도 가끔 어렸을적
달리기 시합 생각이 난다.
달리기가 나에게 있어
참으로 큰 어려움이자
부끄럼이었던 시절을.
그때 그 운동장의 흙냄새와,
체육 선생님의 화약총 냄새,
아이들의 와 하는 함성과
무엇보다 크게 울렸던
내 심장의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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