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운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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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기억의 파편들

가을 운동회

by Peter Jeon 2023.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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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저녁으로 제법 날씨가 쌀쌀해졌다.

이제 정말 가을인 것 같다.

 

문득 초등학교 다닐때의

가을 운동회가 생각난다.

 

가을 운동회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화약 냄새다.

 

아이들이 달리기 시합을 할때

체육 선생님이 쐈던

장난감 권총의 화약.

 

학교 앞 문구점(이라기 보다는

그냥 작은 구멍가게)에서

백원에 몇개 들이 화약을 팔았는데,

그 중에는 동그랗게

6연발 장난감 권총에

들어가는 총알처럼

된 것도 있었다.

 

가을 운동회 달리기 시합때

체육 선생님은 장난감 권총에

그 화약을 넣고 총을 쏘셨다.

그리고 그것은 온 학교에서

체육 선생님만의 특권이였다.

 

 

출발선에 흰 운동복을 입은 아이들이

비장한 얼굴로 선다.

 

보통 여섯에서 여덟명 정도가

한 번에 시합을 했는데,

출발선에 설때의 그 두근거림이

아직도 생생하다.

 

운동장에는 이미

체육선생님이 여러번 발사한

화약총의 매캐한 냄새가 가득하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추스리고

출발선에 서서 달리기 포즈를 취한다.

 

살짝 체육 선생님을 바라보니

선생님이 천천히 장난감 총 들은

손을 하늘을 향해 올린다.

 

꿀꺽.

 

마른 침을 삼킨다.

 

 

"탕!"

 

운동장을 울리는 화약총 소리가 나고

출발선에 선 아이들이 달려나간다.

동시에 응원석에 앉아있는

구경중인 아이들의 "와~"하는

함성도 들린다.

 

나는 언제나 달리기 시합이 싫었다.

 

항상 죽을힘을 다해

열심히 뛰었지만

결과는 늘 꼴등이였다.

 

그것도,

뒤에서 두 번째로 들어오는 아이와도

한 참을 거리가 벌어져 들어오곤했다.

 

3학년때 였던가,

그때 가을 운동회때

약국 일로 바쁘실텐데

아버지께서도 참석하셨었다.

 

역시나 제일 마지막으로

결승선에 들어와

헐떡이고 있는 나에게,

 

아버지께서는

"야, 너 뒤에서 두 번째 애랑도

한참 차이나더라"

하는 덕담(?)을 건네셨었다.

 

그때는 정말 얼마나 부끄럽던지

어머니께서 싸오신

보온병에라도 들어가 숨고 싶었다.

 

 

그러다 어른이 되어서

나의 제일 좋아하는 운동 중 하나가

달리기가 되었다.

 

회사 일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머리가 복잡할 때는

늦은 저녁에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무작정 나와 뛰었다.

 

일요일 이른 아침은

꼭 조깅을 하는 것이

나만의 루틴이 되기도 했다.

 

 

이제는 허리 디스크 때문에

더이상 달리기를 할 수는 없지만..

 

지금도 가끔 어렸을적

달리기 시합 생각이 난다.

 

달리기가 나에게 있어

참으로 큰 어려움이자

부끄럼이었던 시절을.

 

그때 그 운동장의 흙냄새와,

체육 선생님의 화약총 냄새,

아이들의 와 하는 함성과

무엇보다 크게 울렸던

내 심장의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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