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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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기억의 파편들

성탄절의 기억

by Peter Jeon 2023.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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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때는 겨울이 좋았다.

겨울이란 단어 자체가 좋았다.

 

흰 눈이 내리는 어두운 밤,

눈 싸움, 눈사람, 크리스마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와 선물들,

밤 늦게까지 TV에서 방송되는 영화,

한 살 더 나이를 먹는다는 설레임 등.

 

사계절 중 어느 계절이 제일 좋으냐는

질문을 받으면 언제나 주저없이

겨울이라고 외쳤던 기억이 난다.

 

 

어린 아이에게 겨울을 제일 설레이는

시기로 만들어주는 마법의 단어는

역시 뭐니뭐니해도 성탄절인것 같다.

 

하얀 눈으로 뒤덮인 세상,

어두운 밤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

몰래 찾아와 선물을 주고 가시는

고마운 산타할아버지.

 

 

내 기억 속 80년대의 성탄절은

언제나 길거리에 캐롤송이 울렸다.

거리마다 리어카나 가판대에

캐롤송 테이프를 파는 아저씨들이 있었다.

그 옆에는 군고구마나 군밤을 파는

상인들이 함께 하고 있었고.

 

그리고 사람들의 얼굴에는

대체로 흥분과 즐거움이 보였다.

당시는 경기가 좋을 때여서

어린아이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연말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이 많았던 것 같다.

 

1988년 겨울,

그해는 얼마전 가을에 열렸던

88 올림픽의 열기가

아직 식지않은 시기였다.

 

나는 당시 슬슬 산타할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조금씩

의구심을 가져가던 때였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선물만큼은

꼭 받고 싶은, 아직 어린 아이였다.

 

1988년의 성탄절 이브날

나와 내 여동생은 외할머니댁에서

하룻밤을 자고 올 예정이였다.

 

(아이 둘을 모두 처가와 친정에 보내고

 둘이서 오붓하게 성탄절을 보내셨을

 부모님을 생각하니

 이제서야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날 밤,

나와 내 여동생은 자기 전에

함께 무릎을 꿇고

간절하게 하느님께 기도를 했다.

 

하느님, 오늘밤 제발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우리 외할머니집에 오셔서

선물을 주고가게 해주세요.

올해는 엄마 아빠 말씀을

잘 듣지 않았지만

그래도 용서해주시고

꼭 선물울 주셔요.

 

그런 두 아이를 보고 있었을

외할머니와 아직 장가도 가지 않았던

두 외삼촌은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이 역시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몰레 웃음이 터져나온다.

 

아무튼 그렇게 두 손 모아

기도를 하고 잠이 들었는데,

다음날 일어나보니

나와 내 여동생 머리맡에

예쁘게 포장된 선물이 있었다.

 

아, 그때의 감동이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포장지를 뜯을때의 그 떨림도.

 

나는 평소에 갖고 싶었던

3단 변신 로보트 장난감을,

내 여동생은 미미인형을

선물로 받게 되었다.

 

성탄절날 하루종일

둘이 그 장난감과 인형을 갖고

얼마나 행복하게 놀았던지

그때를 생각하면

다시 동심을 얻는 기분이다.

 

 

그때가 내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께

선물을 받았던 마지막 성탄절이였다.

 

10살이 되면서

제법 머리가 굵어진 나는

더이상 산타할아버지를

믿지 않게 되었고,

 

그렇게 산타할아버지는

영원히 한 아이 곁을 떠나게되었다.

 

 

......

 

 

추운 겨울날씨가 되자

요즘들어 딸 아이가 내게 부쩍

올해 성탄절에도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우리집에 오시냐고 묻는다.

 

딸 아이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올해는 엄마 아빠 말씀을 

좀 안들은 것 같은데

혹시라도 선물을 못받진 않을지

불안할 것이다.

 

얘야, 걱정하지마라.

올해도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께선

너에게 선물을 주실것 같단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는

네가 선물을 받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누구보다도 행복해하시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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